2004.12월의 시
첫 눈이 오는데 洗雲 박자원 첫 눈이 오는데 펑펑 쏟아져 내리는데 누구 소식 전할 때 없나 내 소식 전해 받을 이 어디에도 안 계시는데 아, 첫 눈은 내리는데 가슴은 아려 오는데 어디 소식 전할 때 없나 눈은 마구 내리는데.
2004.11월의 시
일상,무표정의 洗雲 박자원 어떤 표정도 없이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사람들은 마냥 서 있다 앉거나 혹은 서서 차 안에서 눈 감고 읽거나 또는 전화를 걸면서 그 가운데 하나 거들떠 보는 이 없이 가스펠을 틀고 걸어오는 시각 장애인 전동차 문이 열리면 무표정의 일상으로 내리고 타면서 자신의 시간 안으로 사라져가는--.
2004.10월의 시
시월의 한때 洗雲 박자원 시월의 우리 고궁을 렘브란트와 루벤스가 채웠다 17세기의 저 켠 그림과 함께 가족 음악회에서 흘러나오는 메조 소프라노 물망초가 겨울에 느끼는 찬바람 같다 깊은 바다 속의 불빛과도 같이 어둠보다는 밝음 추함보다는 아름다움 미움보다는 사랑을 아름드리 은행나무 밑으로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의 정이 다가와 느긋한 가을을 숨쉬게 한다.
2004.9월의 시
가을산책 洗雲 박자원 들녘을 건너 온 바람이 힘들여 걷는 내 발길을 돌아 살아있는 풀 포기가 된다 이어진 돌계단을 건너뛰며 비틀거리는 나를 받아 안고 풀 포기는 더 없이 조심스레 걸음이 된다 이윽고 불꽃같은 노을이 일고 손을 놓지 못하는 아름다움까지 나는 망초 꽃과 고추잠자리를 달래고 있다.
2004.8월의 시
꼭두각시 놀음 洗雲 박자원 동숭동 대학로의 한 커펌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전철을 탔더니 조심스레 신촌에서 서강대교로 빠지는 그 옆길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횟집에 들려 초고추장에 찍은 광어 한 점 들이켜는 꼭두각시가 거기 있다 예쁘다고 머리가 어여쁘다고 어색해진 내 몸짓 머리는 아주 무거워졌다 스프레이 냄새도 코를 찔렀다 양념과 간이 잘 밴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황당함만이 내 그림자 자리로 놓여 있다.
2004.7월의 시
시간처럼 洗雲 박자원 아주 느린 거룻배를 얻어타고 세월따라 흘러가도 죽음을 기다리는 삶처럼 곁에서 거두는 헛 꿈 갈 곳을 몰라 지나치는 이 곳 어떻게 닦아 놓아야할 지 버리는 자리들 다 까맣고 날줄 들줄을 짜맞추고 있는 일.
2004.6월의 시
유월엔 양촌리를 洗雲 박자원 막다른 길 그 안쪽에 정리(情理)가 숨어있다 유월의 햇빛 아래로 넓은 잔디밭이 있듯이 물줄기에 멱을 감고 모두가 맑은 숨 내쉬는 한 쪽에선 대나무 이름 모를 꽃들도 웃음을 피우는 오디며 앵두의 맛 거미줄도 한 몫 둔다 하루살이는 제 세상인 양 물정없이 날아 오르고 신선함과 조요로움 마음의 주름을 펴 준다 아 그 높음 바람도 다 내 것인걸.
2004.5월의 시
부재중의 전화 洗雲 박자원 울려도 받지 않는 눌러도 통하지 않는 누구도 받지 않습니다 꼭 입 다물고 있습니다 손가락은 허공을 휘젓고 다른 세상을 춤추는 가슴 구겨진 공간이었습니다 흩어진 마음이었습니다.
2004.4월의 시
초생달 아래서 洗雲 박자원 어둠이 내리는 통도사를 계곡물 따라 구름은 급히 떠가고 부드러움만 감싸입니다 진신사리와 금란가사 바다 저 넘어 먼 곳에서 왔다는 자장율사의 신라적 계단을 밟으면서 그 계율을 생각합니다 황촛불 안의 대웅전은 은근하고 청초하게 내리비치는 달빛은 불어오는 봄기운을 타고 나의 아득한 신라로 가고 있습니다.
2004.3월의 시
눈 산 洗雲 박자원 흰 빛깔로 덥씌워진 저 산 빙등의 축제같이도 보이고 미끄럼도 탔어요 줄을 서서 아이들처럼 곤도라를 타고 아래를 보니 눈밭은 바람에 사막 같았어요 무늬를 만들고도 있었죠 겨울산은 처음이었는데 하얀 눈은 환상이었어요 맘이 뚫린 듯 가지마다 눈발이 쌓이고 발은 빠져 깊은 수렁에 있었어요. 힘을 내어 산을 올랐죠 아이젠도 없이 향적봉까지 올랐다 내려 온 그 용기가 가상하죠 눈산 구경을 이번 겨울엔 원도 한도 없이 다 했어요 또 기차여행도 그렇구요 여행할 때마다 지아비와 같이 다니기로 했죠 한 번도 산행을 못했잖아요, 그간 다리가 아파서요 어머니 손 꼭 잡아 드릴께요.
2004.2월의 시
양파를 벗기며 洗雲 박자원 눈가에 맺힌 이슬 허공을 헤매는 마음으로 한겹씩 벗겨낸다 그 속은 쳐다볼 것도 없이 내 눈길은 바람으로 숨어 들어 당신을 설레게 하고 껍데기로 남은 내 삶 조심조심 후벼 내어 자욱마다 멀리 하는 허상이며 빈 손에 남긴 것 부서지는 눈물 방울 일 수 밖에.
2004.1월의 시
마음이 시린 날에 洗雲 박자원 누군가 내 마음의 뜨락으로 설레임 안고 오고 있다 내 속의 그 사람 할 말 다 하며 오고 있다 생각 다르게 줄달음 쳐 오고 있다 멀리서 소식 전하려 마음 시린 이 날 내 안으로 달려오고 있다.
2003.12월의 시
겨울별 이야기 洗雲 박자원 횡성 가는 길목 깜깜한 하늘엔 황소자리, 오리온좌 쌍둥이 별들이 높은 곳에서 빛났고 은은함과 차가움 작은개자리, 마차부도 덩달아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2003.11월의 시
나의 노래 洗雲 박자원 당신을 만나러 오늘 국화꽃 들고 찾아 갔습니다 꽃은 환히 빛을 발했습니다. 내려다보니 나무는 멀리서도 풍성했고 산은 또 둥글게 등을 굽혀 우릴 반겨 호랑지빠귀도 울어댔습니다 우리 곁을 떠나신 날 그 호랑지빠귀가 당신을 마중 해 내 집앞에 있었는데 이 곳에선 당신식구로 함께 살고 있대요 잔디밭은 한껏 아주 이슬 머금어 반짝이듯 아름다웠고요 가슴시리도록 당신을 생각하면 무덤 위의 보라빛 꽃은 앙증맞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돌아다 보면 지난 날들은 무척 짧고 남은 날들은 또 많아 지빠귀의 노래가 내 것이 될른지 모르겠습니다.
2003.10월의 시
칼 산의 노래 -푸른 하늘에게- 박자원 텅 빈 상자 같은 칼 산의 노을진 구름을 보노라면 콩나물에 선지 곁들인 해장국도 세월따라 아득히 떠나 갔지만 사람 사는 일 모두 한낱 꿈이던 것을 바람 일어 꽃 떨어져도 꿈은 그 곳 하늘까지 푸르게 가 닿으리라.
2003.9월의 시
비와 함께 박자원 상동 호수공원에서 우산 펼쳐 비 내리는 물 가를 돌 때 떨어지는 빗물은 번쩍였다 두 발 적시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니 가지런한 노년의 부부처럼 휴식은 우리의 미래인가 돌이켜진다 옷에는 구슬같은 빗물 얼굴엔 푸른 바람의 싱그러움 밝은 햇살이 마음 깊은 데를 언제 밝히려는지.
2003.8월의 시
비 내리는 날은 당신에게 박자원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들쑥날쑥 사는 내 모습만큼 푹 젖어버린 어깨 어둠이 와서 볼 수 없다해도 시린바람이 설령 허전하다 해도 늘 반짝이며 기억되는 이는 있다 밤 깊은 때도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는 거침없는 당신 눈을 감으면 안개처럼 아울거리고 눈을 뜨면 영롱해 지는 그대 가고 싶어하는 이 열망 당신 없이는 나를 거뜬히 실어 갔으면 - .
2003.7월의 시
성묘 3 박자원 공원묘원 장미동 5호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다 텅 빈 거리에서 만나 홀로 빛나는 가로수와 바람 오랫만이라고 정말 오랫만이라고 귀에 익은 그 목소리 햇볕을 찾아 잔디도 참 잘 자랐구나 울지 않을 거라며 먼 산 흘기다 눈물 내 쏟는 새여 나무여 산들이여 우리 부모님 잘 봐 드려라.
2003.6월의 시
관악산의 봄 박자원 돌 층계, 나무 계단 지나 숲 속을 오르면 가파른 비탈길 시원한 바람에 숨 한 번 돌이킨다 서서히 바뀌는 산의 빛깔 아카시와 찔레의 꽃향기 부신 하늘 흐르는 땀, 한우물에서 목을 축이고 깔딱고개 넘나드는 이들 산나물에 보리밥, 동동주에 도토리묵 선지가 가득한 해장국까지 드시면 관악의 봄은 부드럽고 도타운 푸름으로 분주하게 지나고 있었다.
2003.5월의 시
들꽃소식 박자원 싱그럽고 싱그럽게 연못으로 바람을 흘리는 부들과 물억새의 푸르럼 보라빛의 매발톱이나 며느리 배꼽, 미나리아제비 하늘을 향해 섬잣나무 수줍은 듯 고개 숙이는 섬초롱 모든 봄이 그렇고 그렇게 졸참나무 사이로 애기의 키 만큼씩 걸어 나온다.
2003.4월의 시
자운서원(紫雲書院)에서 박자원 낡은 서원 뜨락에선 돌계단을 타고 봄이 든다 삼백년도 더 된 나무를 통해 민들레며 제비꽃들은 땅바닥에 깔리고 수줍은 듯 수양버들도 늘어져 때 만난 듯 물고기 떼와 인사를 나눈다 햇살이 부시다 아낙들의 등허리에 업힌 아이들 마냥 봄빛으로 익어간다. *자운서원 : 경기 파주에 있는 김장생. 박세채등 위패를 봉안한 곳.
2003.3월의 시
지나고 보면 박자원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닌 왜 그렇게 다투고 붉혔는지 우스운 것들 조차 그리도 잘난 체 긁고 흠집들 내고 다 지나고 보면 허탈해 지는 그렇고 그런 아등바등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게송
2003.2월의 시
겨울 풍경 박자원 흰 눈발에 갇힌 그대 희미한 그림자는 틈새로 어슴프레 엷어져가고 그렁그렁 눈물고인 자리엔 가슴 울리는 둔탁한 종소리 수심이 깊어 갈 무렵 눈은 쏟아져 숨겨진 이야길 만들고 자꾸 서리 꽃다발을 바치며 겨울 아침을 차갑게 열려고 한다.
2003.1월의 시
시간 속에서 박자원 오늘에사 내일로 가는 까만 하루를 본다 보이는 것도 아니고 잡히는 것도 아닌데 팔 다리는 어제에 머물고 머리는 내일을 향해 추켜들지만 나는 중심의 이쪽과 저쪽에서 완벽하게 시간을 끌어간다.
2002.12월의 시
오두산 통일 전망대에서 박자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막막한 저 끝까지 들렸으면 통일 한 마당의 노래소리, 만세소리 꽹과리 소리도 더 멀리 퍼졌으면 안개 자욱한 땅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마음 무엇하러 여길 왔나 무엇하러 왔다가 가는가 나무들도 강물도 바람까지도 환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느껴진다 적막감까지 도는 철책선 강물도 잠이 든 듯 고요하다 너희들이 무얼 알까 외국인들은 설명만으로도 이해 할는지 아이들은 피부에 와 닿는 그러나 오십을 살아도 나는 모르거늘.
2002.11월의 시
가을 나들이 박자원 차 없는 거리를 걸었다 전시회장도 이 곳 저 곳 둘러보고 구필화가의 전시회장에선 찡한 기분 또 걸어서 경인화랑의 툇마루에 앉아 정원에 열려 있는 감.대추를 보고 남도 점심과 갓부리도 먹었다 대추차 마시러 귀천엘 들렸고 들꽃 전시회의 통인가게도 들려 나막신 화분에 심은 갯모밀을 사서 어슬렁 어슬렁 거리다가 설탕 안 탄 감로차도 공짜로 얻어마시며 줄을 서서 찹쌀.옥수수의 호떡을 사먹는 사람들 구경을 하고 생강엿에, 어묵에... 아 사람이 가득하구나 그러나 전시회장은 텅텅 비어 있고 길 양켠에 벌려 논 남의 것들 우리 옛 것은 찿기가 어려위 빠른 걸음으로 나는 인사동에서 멀리 도망쳐 나왔다.
2002.10월의 시
바람의 그림자 박자원 아무도 없는 곳이다 소용돌이로 일으킨 기억들이 멀어져 간 절규로 들어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칼끝으로 파고드는 부신 햇살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로 떠 돌 하늘 아래 소리 하나 없이 가슴에 묻게 하는 것 빛나던 눈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길 가도 가도 빈 땅 드디어 어지러움으로 드러누운 바람의 그림자 난 지금 그릴 수도 없구나
2002.9월의 시
맑은 날 박자원 깨어 있는 하늘 빛이 가을 같은 날 나무들 사이로 새들 오가면 내 설레임 조금씩 자라나는 하얀 햇살에 더는 숨기지 못하고 아주 고맙고 소중한 때의 그 깨우침을 그물로 깁는다 싱그러운 시어(詩語)의 투망 잔득 건져 올리고 싶은 걸망은 가벼울수록 좋은 법 마음은 늘 비워 거듭 닦아내 언어의 높은 나이로 올려 내 삶의 둘레에 다 쌓아두고 싶다.
2002.8월의 시
가고 가고 박자원 토끼풀꽃 우거진 숲길 구름 속을 빠져나온 나는 둥근달을 따라 걷는다 등나무에 기대 앉아 주저리 주저리 무슨 얘기고 하다가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옛노래도 기억 해 내고 시나브로 바람소리 따라 하이얀 꽃들의 인사도 받으며 반지풀도 나도 달을 쫓아가고 가고 가고 또 가고.
2002.7월의 시
꿈을 위하여 박자원 양홍빛물의 거리에서 뭘 찿고 있는지 서로 잔 부딪치며 대 ~ 한 민국 짜자작 짝짝 넘칠듯한 너를 마셔도 취하지 않는 그대 있음에 또 내가 있는 환성과 노래소리 다른 꿈의 성취를 위하여 우린 광화문 네거리를 팔 저으며 간다.
2002.6월의 시
바람의 그림자 박자원 아무도 없는 곳이다 소용돌이로 일으킨 기억들이 멀어져 간 절규로 들어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칼끝으로 파고드는 부신 햇살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로 떠돌 하늘 아래 소리 하나 없이 가슴을 묻게 하는 것 빛나던 눈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길 가도가도 빈 땅 드디어 어지러움으로 드러 누운 바람의 그림자 난 지금 그릴 수도 없구나.
2002.5월의 시
그리고 계속하여 박자원 길 한모룽이 낙지집 구석자리 매운낙지와 콩나물 무침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을 매연 가득한 종로 언저리 볶음과 지짐 탕따위가 범벅이 되어 있고 옛날 옛적부터 그랬던 것처럼 삐꺽거리던 바닥을 딛고 채워질 수 없는 허무를 생각하노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과자집 케익 반 쪽과 홍차 한 잔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을 옆에 끼고 내 삶은 거리를 훑고 있던 것을.
2002.4월의 시
성묘 2 박자원 큰 키 나무 제일 높은 가지 그 끝 까마귀 한 마리 앉아 운다 울고 있는 나를 내려 보며 - 넌 왜 우니?
2002.3월의 시
미완의 그림 박자원 봄에 이는 물안개는 바다를 부르고 바다 멀리 보이는 언덕으로 나는 치달려 간다 갓 깬 꿈은 마냥 하늘로 뻗쳐가고 생각은 또 다른 길에서 나를 메꾸어 주는데 곧은 햇살 늦게 사 괭이 갈매기를 불러 한없이 울음을 삼키게 한다 내 손짓에 화답하는 밤섬 내 부름까지 바다는 다가와서 그림 하나를 수 놓고 사라져간다.
2002.2월의 시
어머니께 - 늘 보고 싶어 - 박자원 오늘은 겨울산과 바다를 보고 왔어요 깊은산골 올라가고 내려올 때 당신 생각 많이 했지요 물의 끝까지 함께 가고 싶어요 부드럽게 감긴 수평을 열고 늘 같이 이고 싶었어요 보고 싶어요 언제 건 더불어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낙엽이 쌓인 산자락이나 물이 빠진 개펄을 보고도 말입니다
2002.1월의 시
나그네 박자원 푸른 소나무와 푸른 강물 가지가 흔들리는 대로 물결이 치는대로 오래오래 잊지 않고 멀리 함께 잘도 가는구나 나의 어제와 나의 오늘과 나의 내일을 한 주먹에 모두어 아득하고 먼 계림의 요산에 올라 나를 생각해 본다.
2001.12월의 시
늘 그대로 - 한 해를 보내며 - 박자원 당신을 부르며 난 막지 않았어요 떠남은 그냥 이별인 게 좋았어요 그리움이 깊으면 가슴에 얼룩을 지우듯 약한마음 보이지 않을게요 늘 그대로인 줄 알았는데 잎을 버린 저 나무들처럼 당신을 되돌릴 수 없어 하기에 이렇듯 떠나기로 하였어요.
2001.11월의 시
가을의 시 박자원 눈물 하나 없이 가을은 깊어가고 바람 한 점에 낙엽 한 잎 정수사 돌 계단에 기대앉아 풍경소리 바람소릴 듣는다 속절없는 가을을 나는 보고 있다 말로 다하지 않고 이름을 주려고 하지 않는 내 작은 음성의 서글픔이여 나의 계절이여.
2001.10월의 시
항공 엽서 박자원 멀리서 불러본다, 이역만리 엽서를 사들고 낯선 발걸음이 오가는 우체국으로 들어선다 빈 자리는 얼마나 넓던가 멀리 내가 떠나와 있는가를 사람들 틈새에서 바람은 스친다 내 땅이 아닌 반대편의 머나먼 곳 오가며 또 가고 온다는 일 후카폭포 마오리족의 춤과 와이토모 동굴의 작은 반딧불 투투카카 밤하늘엔 은하수만 흐른다 지구의 저편 내가 있다는 사실 우리가 또 그들을 몰랐었듯이.
2001.9월의 시
계림 유람 - 리강 에서 - 박자원 가득 찬 것이 산 이었고 터엉빈 것이 산이었다면 푸르른 산빛의 봉우리들도 그랬다 와와어 대신으로 쏘가리를 먹고 물소도 제법 수영을 익혀 강바람에 용미대를 흔드는 뗏목까지 저어 가마우지를 날린다 배 안에서 든 십리향차 한 잔 내 이마의 땀방울을 씻어 슬픔까지 깡그리 거둬간다.
2001.8월의 시
뒷 풀이 박자원 잿빛 하늘을 보듬고 비는 울고 있다 가슴을 내리치며 울고 있다 사십구재가 끝났으니 얼른와서 판을 벌려야지 어스름에 비는내려 잿빛 땅을 만든다.
2001.7월의 시
그 어디로 박자원 어디에 계시나 그 분은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으로 울부짖는 소리의 메아리 주눅들어 어색하고 점점 눈 흐려 가슴은 저며 오는데 정신이 맑아진다는 석창포 달인 물 세월을 마시듯 쏟아 붓는다 어디에 내가 있어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바람에 흩어지는 꿈 가슴 한 쪽은 허물어져 빛바랜 영상을 이어내고 난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나는 가고 있는가.
2001.6월의 시
그리고 계속하여 박자원 길 한모룽이 낙지집 구석자리 매운낙지와 콩나물 무침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을 매연 가득한 종로 언저리 볶음과 지짐 따위가 범벅이 되어 있고 옛날 옛적부터 그랬던 것처럼 삐꺽거리던 바닥을 딛고 채워질 수 없는 허무를 생각하노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과자집 케익 반 쪽과 홍차 한 잔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을 옆에 끼고 내 삶은 거리를 훑고 있던 것을.
2001.5월의 시
땅끝마을 박자원 맨 아래층의 땅끝까지 무얼 찾으러 왔을까 진달래,벚꽂은 흐드러졌는데 밭을 매고 있는 사람아 봄을 맡고 있는가 봄을 맞고 있는가 갈두산 엣님들 지혜로운 봉화대 사방을 둘러봐도 사방이 물 바다는 올망졸망 떠 있는 섬을 받들고 절망의 희망같은 희망의 절망같은 땅.
2001.4월의 시
초록 바람 박자원 물 맑고 바람 시원타 실개천이 따르는 오솔길 억불산에 오른다 가노라면 따라와 피는 나무잎새 작은 숲 속 새들도 빠른 인사를 한다 시간은 영원으로 이어지고 제비꽃, 할미꽃들까지 생명력을 들춰내고 산 봉우리엔 휜 구름 바람도 초록빛으로 보는지 인세의 일을 다 잊게한다
2001.3월의 시
봄 눈 박자원 너울 너울 눈은 춤을 추고 내 가슴엔 꽃이 피어나고 세상이 눈꽃처럼 녹아버려도 한 걸음 뒤로 젖힌 기다림은 화사함의 준비된 바램 아직은 봄 되기에 이른 햇살에 가려진 힘 겨루기 그 봄은 언제 나타나려는지.
2001.2월의 시
새벽 기도 박자원 모든 일 잘 되라고 절하고 빕니다 팔을 걷고 연비 받으며 다가드는 한 해를 바라봅니다 가슴에는 황금빛의 만자 족륜에는 벽옥무늬의 일천가지 꽃 삼십억의 상호를 두루히 장엄하고 천백억의 몸을 나퉈 구하십니다 먹 매무새와 둥근 이마의 석장 짚고 염주 든 스님 가을의 보름달과 같은 그 모습 눈썹까지 수양버들로 빼어납니다 새벽의 이 기도 헛되지 않게 올 한 해 그득 채워 주십시오.
2001.1월의 시
아름다운 반란 박자원 눈이 내리는 날의 서글픔으로 옷깃을 여미고 모자도 눌러 쓴다 근육주사 두 대와 팔에도 한 대 또 머리 속까지 흐트러지는 몇 개의 알약들을 다시 털어넣는다 가물거리다 사라지는 내 꿈 철은 아직 덜 들고 드디어 머리만 하애져버린 안스러움의 공감대만 는 나.
2000.12월의 시
떠 남 박자원 가진 것 하나 없이 떠야 하는 아, 눈물 나도록 허망스러운 어딘가요 당신이 떠나야 할 곳은 꿈결 같기만 한 아득함으로 가슴 속 깊은 나락에 내려 앉은 허무의 이 치마 자락 세월따라 모두가 가야 하는 쓸쓸한 그 곳 나도 가야 하겠거늘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게 몸을 가누던 당신의 바람 들꽃같이 환하게 냇물로 흐르다가 나도 그대처럼 떠났으면.
2000.11월의 시
억새 박자원 민둥산 산등성이는 억새 투성이다 억새는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언뜻 부는 바람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몸을 부비고 있었다 저 하늘 너머로 저 억새풀 너머로 내 안타까움이 소리치고 있었다.
2000.10월의 시
성묘 박자원 진정할 수가 없었다 내내 몸짓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시간의 영원한 무덤일지라도 침묵해야 하는 것 내가 간직 한 슬픔의 몫이었다 탑을 쌓는 사랑의 이 간절함을 쓰고 또 쓴 편지를 마음의 우체통에 넣으면 산의 높이만큼 가까이 다가서는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는 눈물 한 방울로 나를 삭힌다.
2000.9월의 시
이 계절에 박자원 무엇일까 이토록 젖어오는 그리움과 사물들의 눈웃음은 아름다운 것 그것대로 또 생각할 수 있다는 행복의 느낌일 수 있고 화사한 꽃들 정겨움 속에서도 늘 변함이 없는 갈무리와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일 따위 계절은 웃었다 울었다 하다가 어떻게라도 할 수 없을 땐 살아나보자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2000.8월의 시
비에 젖은 백운암 박자원 무채색으로 흐려있던 산사가 계곡의 물소리에 젖어 들 무렵 스님이 따라주는 차를 나는 마시고 있었다. 고요와 무심 차라리 낮섦에 대한 공연한 떨림 그러나 나는 무아경이었다. 이내와 가랑비가 녹아나는 곳에서 나는 희부움한 산을 올려다 보며 돌올한 존재로 솟구치는 백운암을 지키고 있었다.
2000.7월의 시
여행 길 박자원 너무도 멀어 경쾌한 옷차림으로 이 땅의 반대편으로 가보았으면 기분좋게 햇빛에 취하며 낯선 길 한량없이 찾아보았으면 산길은 굽이쳐 흔들리며 오를 때 마음엔 새싹들 마구 트고 창 밖으로 세상 밝히는 꽃빛들 혼자의 즐거움으로 공상이라도 좋으련만 이 여행 길 빈 자리 어디서 끝날지 난 더는 생각지 않기로 했다.
2000.6월의 시
생 각 박자원 나는 누워있다 살아야 하는 세상은 서 있음이라 알았는데 나는 어제도 누워 있었고 오늘도 누워있다 마음 속의 평안을 두드리며.
2003.12월 이후의 시 ------> 따까닥